반문학에 대해 몇 글자 적어봅니다.
반문학이란 무엇일까요?
반문학은 한자로는 문학에 반돼하다(反)라는 글자를 쓰는 反文學을 씁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기존의 문학 전통이 담보하는 문학에 대한 관념과 제도적, 형식적 틀 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위적 관점의 문학"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영어로는 counter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영미에서 비슷해보이는 용어로 counter narrativ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억압받거나 통제되거나 소리치지 못한 이들의 경험과 시각을 자세히 서술한 이야기, 혹은 서술자를 말합니다)
즉, 반문학은 문학에 반돼되는 것, 문학의 반역적 창조물 반문학은 전통적인 문학의 규범과 예측을 뒤엎으며, 소통과 창작의 경계를 훨씬 넘어가는 문학적 운동을 지칭합니다. 이는 종종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규범에 도전하고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탐구하는 창작 활동을 포괄합니다.
문학을 반돼하면서 새로운 문학을 만들어내는 반문학은 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형식, 주제, 언어로 문학적 실험을 통해 예상치 못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반문학은 어쩌면 기존 문학을 뛰어넘어 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반문학 예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다다이즘(Dadaism)이나 실존주의 문학입니다. 이외에도 기존의 문학을 쇄신하게 하는 모든 과정에서 반문학이 있었겠지요.
20세기 초기에 등장한 다다이즘은 무질서와 도전적인 예술적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특히, 트리스탕 차라(Tristan Tzara)의 작품은 기존의 예술과 문학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대표합니다. 그는 20세기 초기의 르마니아 출신 시인, 작가, 예술가로, 다다이즘(Dadaism) 운동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언어의 경계를 허물고 전통적인 예술 규범에 도전하는 실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다이즘 운동은 무의미한 언어, 적절하지 않은 사물 조합, 비판적 사고 등을 강조하며, 차라는 이 운동을 통해 현대 예술과 문학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의 경우에는 개인의 존재와 자유, 의미 부여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문학이 쇄신합니다. 실존주의 문학으로는 모두가 아는 알베르 카뮈와 장 폴 사르트르가 실존주의의 중요한 작가로 꼽힙니다.
쓰지 않고 쓰는 반문학
이외에도 포스팅 제목에 쓴 것처럼, 문학을 쓰지 않는 것 또한 반문학에 포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쓰지 않고 어떻게 문학이 되는 것일까 궁금하신가요? 문학계에서는 쓰지 않고 문학을 써낸 사례가 차고 넘친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를 통해 돈키호테를 완전히 새롭게 쓰지요. 사실 철자 하나 빠지지 않고 같지만, 같은 텍스트가 다른 가상의 상황과 작가를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됩니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문학 작품들을 전부 떠올려보세요. 실제하지 않지만 제목과 일부 본문만 존재하는 수많은 책들, 완전히 새로운 장르라고 볼 수 도 있습니다.
레몽 루셀이나 루셀에게 영감받은 마르셀 베나부도 참고해보세요.
2024.02.02 - [분류 전체보기] - 마르셀 베나부(Marcel Bénabou)와 대필 기법
2024.02.01 - [분류 전체보기] - 메타그램 기법을 쓴 초현실주의 작가 레몽 루셀에 대하여 (Raymond Roussel)
반문학의 역할
반문학은 문학이 가지고 있던 규범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기존의 문학의 틀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문학계 내에서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문학을 만들어냅니다. 언어와 형식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를 깨고 창의적인 실험을 통해 문학적 경계를 확장하도록 하는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문학계 바깥에서는 사회적 비판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문학은 종종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부당함, 문화적 편견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여 사회적 변화에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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